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2004)을 읽는 중입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도 없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에는 작가의 얼굴 정도는 알고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책 앞 날개나 제일 뒷장의 프로필 정도는 읽어서 그 삶을 한번 추측은 해 본 다음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죠.(말 하고 보니 '얼굴'이 '프로필'에 맞먹는 역할을 한다는 논리가 펼쳐지려고 합니다만...ㅋㅋ) 제가 이런 룰 아닌 룰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은 말하자면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랄까요? 작가에 대한 정보를 통해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내 주위의 어떤사람 쯤~으로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면 더 생생한 작가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해서입니다.

강연하는 김연수 소설가(월리 아니에염)
뭐 김연수의 책을 보기 위해 저는 검색을 통해 사진을 찾아보다가, 책을 읽기도 전에 순전히 '귀여워서(김연수 · 42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몇편의 글을 읽었죠. 그리고 급기야는 글을 읽기 위해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알기 위해 글을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소설보다 에세이가 낫겠다 싶어 고른 책이 바로 <청춘의 문장들>입니다.
제게 있어서 김연수 작가는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윤대녕의 뒤를 이을 작가는 김연수'라고 국문학도인 친구는 이따금씩 말했습니다만, 그들의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그 이야기는, 마치 미취학아동에게 '석사 다음이 박사다'라고 말해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설마 요즘 애들이라면 다 알아들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무서운 요즘아이들!) 지금까지 읽은 것이라고 해 봐야 몇 편의 단편과 읽다만 장편, 그리고 인터뷰 기사들 정도가 전부이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김연수의 매력을 느끼기엔 벌써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바엔!"
소설보다 에세이가 낫겠다 싶어 고른 책이 바로 <청춘의 문장들>입니다.
제게 있어서 김연수 작가는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윤대녕의 뒤를 이을 작가는 김연수'라고 국문학도인 친구는 이따금씩 말했습니다만, 그들의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그 이야기는, 마치 미취학아동에게 '석사 다음이 박사다'라고 말해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설마 요즘 애들이라면 다 알아들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무서운 요즘아이들!) 지금까지 읽은 것이라고 해 봐야 몇 편의 단편과 읽다만 장편, 그리고 인터뷰 기사들 정도가 전부이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김연수의 매력을 느끼기엔 벌써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조개가 매력포인트랍니다
제가 이런저런 글들을 읽고서 김연수 작가에 대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소설가'에 대한 그의 입장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기계발서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누구나 노력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는 희망적인(?) 소설가론論.
"예술은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겠지만 '영감'없이는 결코 도달 불가능한 영역이며, 더군다나 김연수와 같이 문단에서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는 절대 노력'만'으로 태어날 수 없다!"
"천재 작가는 50%의 영감과 50%의 노력 쯤으로 태어난다....?"
정도가 저의 고정관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가 전적으로 노력에 공을 돌리고, 작가가 될 줄 몰랐다고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에게 애초에 흥미나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리라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이야 어쨌든 간에 그 '노력론論'은 그가 동경해 마지않는 이상(李箱)의 천재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와 매치되어 더욱 의아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우리가 보낸 순간>(2010)에 나오는 글이자 작가의 텀블러메인에 한동안 쓰여있던 글입니다.
"예술은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겠지만 '영감'없이는 결코 도달 불가능한 영역이며, 더군다나 김연수와 같이 문단에서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는 절대 노력'만'으로 태어날 수 없다!"
"천재 작가는 50%의 영감과 50%의 노력 쯤으로 태어난다....?"
정도가 저의 고정관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가 전적으로 노력에 공을 돌리고, 작가가 될 줄 몰랐다고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에게 애초에 흥미나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리라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이야 어쨌든 간에 그 '노력론論'은 그가 동경해 마지않는 이상(李箱)의 천재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와 매치되어 더욱 의아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우리가 보낸 순간>(2010)에 나오는 글이자 작가의 텀블러메인에 한동안 쓰여있던 글입니다.
'매일 15매씩 쓰는 삶'
딸의 이름이 '열무'-어딘가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인 것, 첫 장편인 <꾿빠이 이상>을 꾸.준.히. 썼다는 것, 꾸준한 체력관리 운동으로써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것. 대중음악평론가, 영화 에세이 출간, 번역서 출간 등...(거기다가 개띠, 막내아들, A형, 양자리...등등ㅋ) 여러가지 팩트를 통해 그는 굉장히 자유로우면서도 영리하고 실용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지금껏 생각 해 온 소설가의 이미지와 괴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이상문학상이나 황순원문학상 같은 걸 받으려면 박민규처럼 세상과 단절 된 곳에서 휠체어에 앉아 글 쓰거나 해야 하는게 아닐까? 아니면 이외수 선생처럼 철문 잠그고 들어가 끝날때까지 안나오거나 해야 되는거 아닐까? 저걸 다 하면서 언제 글을 쓰지?
정답은 "매일 15매씩 쓰면" 마라톤 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좋은 책을 번역 하면서도, 영화에 잠깐 출연하면서도, 아내와 딸아이'열무'와 행복하게 살면서도 멋진 글을 쓸 수 있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코 15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15매'란 꾸준히 쓰는 그의 태도를 뜻하는 것이죠.)
<청춘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과거에 읽었던 문장을 '빙자'하여 수많은 과거 이야기를 하는 김연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청춘의 문장들로 반추한 글들은 우리나라 역사속의 인물들이 남긴 주옥같은 글들, 짧고 아름다운 하이쿠, 그가 좋아하는 당시(唐詩)를 비롯한 여러 국적의 작가들의 시가 있습니다. 그의 젊은시절, 어린시절, 어머니, 형, 그의 사람들, 군대에서의 이야기, 대학에서 이야기, 그의 청춘, 음악들, 여행들...등이 순서없이, 여과없이(여과된 것이 딱 한가지 있다면, 여자친구?) 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조용한 열람실에서 읽다가 웃겨서 크크큭킄킄 했던 부분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부대로 출근하면 점호하기 전에 군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첫번째 일이었다. '군대식'이라는 것은 '병사들이 자체적으로 지은'이란 뜻이다. 같은 곳을 지칭하는 단어이긴 해도 호텔 화장실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매일 청소하다보면 그래도 참지 못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본부중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꾸며놓아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사실 '군대식'이라는게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한 것들이다. 어쨋든 그렇게 꾸며놓은 것 중에 '이 주의 금언'이라는 게 있었다. 비닐을 붙인 합판 안에다가 매주 이런저런 금언을 바꿔 붙였다. 예컨대 '겉으로 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모든 것이 바로 힘이다-파스칼' 같은 글을 차트 글씨로 써 붙여놓는 식이었다. 아침에 청소할 때마다 그런 글귀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가 아니라 교훈을 찾고자 했다면 조울증도 치료됐겠지만, 말했다시피 애당초 내게는 긍정적인 회로가 작동불가능했던 데다가 그런 금언을 붙이겠다고 제일 처음 마음먹었던 사람도 아마 사병들이야 어떻게 되든 검열관의 눈에 쏙 들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날도 잠에서 덜 깬 멍청한 표정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집게로 창가 재떨이와 소변기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이 주의 금언'을 언뜻 봤다. 계속 청소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다시 봤다. 『논어』의 한 구절이었다.
오줌이 묻은 양철 집게를 들고 서서 나는 웃었다. 한참 동안 웃었다. 웃음을 그치고 담배꽁초를 줍는데 다시 배시시 웃음이 터져났다. '이러지 말자'가 아니라 '이르지 말자'라고 해야 옳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내 머릿속으로는 공자님이 이른 아침 왜 가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가야만 하는 부대 화장실에서 집게로 담배 꽁초를 줍는 내 소매를 붙잡고 '김 일병, 이러지 말자. 우리 아무리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잘 알겠습니다.
정답은 "매일 15매씩 쓰면" 마라톤 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좋은 책을 번역 하면서도, 영화에 잠깐 출연하면서도, 아내와 딸아이'열무'와 행복하게 살면서도 멋진 글을 쓸 수 있다...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코 15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15매'란 꾸준히 쓰는 그의 태도를 뜻하는 것이죠.)
<청춘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과거에 읽었던 문장을 '빙자'하여 수많은 과거 이야기를 하는 김연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청춘의 문장들로 반추한 글들은 우리나라 역사속의 인물들이 남긴 주옥같은 글들, 짧고 아름다운 하이쿠, 그가 좋아하는 당시(唐詩)를 비롯한 여러 국적의 작가들의 시가 있습니다. 그의 젊은시절, 어린시절, 어머니, 형, 그의 사람들, 군대에서의 이야기, 대학에서 이야기, 그의 청춘, 음악들, 여행들...등이 순서없이, 여과없이(여과된 것이 딱 한가지 있다면, 여자친구?) 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조용한 열람실에서 읽다가 웃겨서 크크큭킄킄 했던 부분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부대로 출근하면 점호하기 전에 군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첫번째 일이었다. '군대식'이라는 것은 '병사들이 자체적으로 지은'이란 뜻이다. 같은 곳을 지칭하는 단어이긴 해도 호텔 화장실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매일 청소하다보면 그래도 참지 못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본부중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여러 가지 장식품으로 꾸며놓아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사실 '군대식'이라는게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한 것들이다. 어쨋든 그렇게 꾸며놓은 것 중에 '이 주의 금언'이라는 게 있었다. 비닐을 붙인 합판 안에다가 매주 이런저런 금언을 바꿔 붙였다. 예컨대 '겉으로 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모든 것이 바로 힘이다-파스칼' 같은 글을 차트 글씨로 써 붙여놓는 식이었다. 아침에 청소할 때마다 그런 글귀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가 아니라 교훈을 찾고자 했다면 조울증도 치료됐겠지만, 말했다시피 애당초 내게는 긍정적인 회로가 작동불가능했던 데다가 그런 금언을 붙이겠다고 제일 처음 마음먹었던 사람도 아마 사병들이야 어떻게 되든 검열관의 눈에 쏙 들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날도 잠에서 덜 깬 멍청한 표정을 하고 화장실로 갔다. 집게로 창가 재떨이와 소변기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이 주의 금언'을 언뜻 봤다. 계속 청소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다시 봤다. 『논어』의 한 구절이었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樂而不淫 哀而不傷
樂而不淫 哀而不傷
오줌이 묻은 양철 집게를 들고 서서 나는 웃었다. 한참 동안 웃었다. 웃음을 그치고 담배꽁초를 줍는데 다시 배시시 웃음이 터져났다. '이러지 말자'가 아니라 '이르지 말자'라고 해야 옳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내 머릿속으로는 공자님이 이른 아침 왜 가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가야만 하는 부대 화장실에서 집게로 담배 꽁초를 줍는 내 소매를 붙잡고 '김 일병, 이러지 말자. 우리 아무리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잘 알겠습니다.
- 청춘의 문장들 pp.156~157
웃음을 참느라 코를 틀어쥐고 애를 썼지만 자꾸 생각이 나서 한참 뒤를 무작정 폈는데 이런 부분이 나왔습니다.
"너 눈병 걸렸니?"
1987년 11월, 눈에 안대를 하고 학교에 갔더니 옆짝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도 닦지 않고 나온 길이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2교시가 끝난 뒤, 나는 오른쪽 눈에 찼던 안대를 왼쪽 눈으로 옮겼다. 옆짝은 한동안 내 오른쪽 눈을 바라보더니 더이상 묻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눈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안대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양쪽 눈에 다 안대를 하고 앉아 있고 싶었던 것이다.
"너 눈병 걸렸니?"
1987년 11월, 눈에 안대를 하고 학교에 갔더니 옆짝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도 닦지 않고 나온 길이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2교시가 끝난 뒤, 나는 오른쪽 눈에 찼던 안대를 왼쪽 눈으로 옮겼다. 옆짝은 한동안 내 오른쪽 눈을 바라보더니 더이상 묻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눈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안대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양쪽 눈에 다 안대를 하고 앉아 있고 싶었던 것이다.
- 청춘의 문장들 p.185
결국 저는 열람실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사실 두번째로 본 부분은 그렇게 우스운 내용이 아니었는데 이미 웃음보가 터진 저에게는 그저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글에 불과했습니다.
책 곳곳에 김연수 특유의 리듬감과 위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읽는 중에 느끼는 점은 한마디로 참 아름다운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실용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계발서가 주는 '다그침'과는 확연히 다른, '위로'를 책에서 선사합니다. 삶의 순간순간 어두움을 마주했던 그의 모습, 취업 할때즈음 그가 느꼈던 것들, 어떻게 보면 비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청춘', 가운데가 뚫린 도넛같이, 채워지면 도넛이 아니게 되는, 가운데가 뻥 뚫린 채 살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연수가 되었기 때문에, 아니, 김연수이기 때문에 그의 추운 시절은 우리에게 따뜻함이 되고, 그의 뻥 뚫린 공간이 우리를 채워주게 됩니다.
'연'자를 어디선가 따온 것이기 때문에 김연수가 그의 본명이 아니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어떤 이름으로 그의 글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아직 끝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머지 부분은 영원히 읽지말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춘의 문장들. 언제까지고 청춘으로 기억될 김연수의 아름다운 산문집입니다.
+) 역시 서평은 읽다말고 쓰는게 제맛인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가 객원작가로 참여한 <마라톤을 완주하는 방법>
결국 저는 열람실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사실 두번째로 본 부분은 그렇게 우스운 내용이 아니었는데 이미 웃음보가 터진 저에게는 그저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글에 불과했습니다.
책 곳곳에 김연수 특유의 리듬감과 위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읽는 중에 느끼는 점은 한마디로 참 아름다운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실용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계발서가 주는 '다그침'과는 확연히 다른, '위로'를 책에서 선사합니다. 삶의 순간순간 어두움을 마주했던 그의 모습, 취업 할때즈음 그가 느꼈던 것들, 어떻게 보면 비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청춘', 가운데가 뚫린 도넛같이, 채워지면 도넛이 아니게 되는, 가운데가 뻥 뚫린 채 살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연수가 되었기 때문에, 아니, 김연수이기 때문에 그의 추운 시절은 우리에게 따뜻함이 되고, 그의 뻥 뚫린 공간이 우리를 채워주게 됩니다.
'연'자를 어디선가 따온 것이기 때문에 김연수가 그의 본명이 아니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김연수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어떤 이름으로 그의 글들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아직 끝나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머지 부분은 영원히 읽지말아버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춘의 문장들. 언제까지고 청춘으로 기억될 김연수의 아름다운 산문집입니다.
+) 역시 서평은 읽다말고 쓰는게 제맛인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가 객원작가로 참여한 <마라톤을 완주하는 방법>

